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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편지 - '우리'에 대하여 : 자존감 이야기

김아현 (kim03**) | 2017-01-02

 








안녕하세요. 놀A조입니다. 오늘은 저희가 일기 대신 편지를 들고 왔습니다. 편지의 수취인은 바로 낮은 자존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대학생들인데요. 대학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주제인 연애, 공부, 취업으로 익명의 편지를 골라 봤습니다. 세 통의 편지가 여러분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연애, 공부, 취업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 저희의 편지를 받아주실래요?

 



 








 
 

주제 1. #연애


 

 자존감이 가장 낮아졌던 시기, 를 묻는다면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별 후가 아닐까요. 준비하지 못한 이별은 언제나 충격적입니다. 덜어낼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덜어내질 리가 없지요. 한동안은 계속 이별했던 그 장소에 마음이 묶여선, 계속해서 병든 사람처럼 이유를 고민하고 또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갉아먹게 되는데, 그건 곧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지죠.

 저의 경우는 그랬습니다. 이별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았는데,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나의 외관에서 찾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내가 생각했을 때 우리 사이엔 문제가 없었고, 이별을 통보받아야 할만한 이유가 나에겐 없었으니까. 결국, 내가 이 이별을 마주하게 된 것은 외적인 부분에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러한 점이 그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거울 속의 나를 혐오하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 자체를 꺼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이어트를 했어요. 피부 관리에도 몰두했죠. 하루에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지 않으면서 미친 듯이 운동에 매진하다 보니 자연히 살이 빠지더군요. 거의 6kg 가까이 감량했죠. 그래서 자존감이 올랐느냐고요? 아니요. 아무리 해도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존감이 없는 나에게 계속 거울 속의 나는 못생기게만 보였고, 여전히 어딘가 잡히는 살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갑작스러운 다이어트 때문에 식이장애가 왔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체 같은 삶이 계속됐지만 그 자책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나를 버리고, 다시 태어나고 싶었습니다. 네, 자존감이 없는 사람의 끝은 자기혐오더군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 계속됐습니다. 폭식과 절식이 반복되었고, 그 끝에 우울한 나날들이 계속되었죠.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용기도 없었습니다. 다이어트를 하고 나서 몇 번의 인연이 찾아왔지만, 그럴 때마다 저를 짓누르는 건 '저 사람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라는 의심뿐이더군요. 스스로를 평가하기 시작했고 내게 점수를 매겼습니다. 지옥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지옥 같은 나날.



 그 시기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나를 전혀 사랑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되었을 때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위해 나를 갉아먹고 있지? 끊임없는 비교와 자책 속에서. 확실한 것은, 나를 이 지옥에 몰아넣은 사람은 지금쯤 나에 대한 그 어떤 생각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나를 아끼지 않는 사람 때문에 나를 갉아먹는 나 자신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어요. 피폐해진 나를 보면서 그때 생각했습니다. 돌아갈 수 있을까? 하고.

 억지로나마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먹을 때마다 열량을 재는 습관은 여전히 버리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올바른 식습관을 다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그리고 거울을 보면서 계속 스스로 자기암시를 걸었습니다.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그렇게 말하다 보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외적인 구속에서 벗어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다시 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놀랍게도 조금씩 '나'가 보였습니다. 지옥 속에서 단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거울 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나'였어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던 나, 작은 취미들에 행복하던 나. 그때야 나는 아주 오랜만에 자신을 마주한 것 같았습니다.

1년이 걸렸습니다. 짧다면 짧고, 기다면 긴 시간이었어요. 물론 먹기 시작하니 살은 다시 쪘죠. 그렇지만 확실한 점은, 그때보다는 지금 마주하는 나 자신이 더욱더 행복해 보인다는 점이에요. 나는 남을 위해 나를 관리했어요.  '나에 대한 배려'가 배제되어 있었죠. 나를 위하지 않고 억지로 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나를 갉아먹게 된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사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다짐은 못 하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나를 괴롭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비로소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된 것 같았습니다.

당신도 혹시 나와 같이, 외적인 당신을 당신의 전부라 생각하며 거울 속 자신을 혐오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어서 그 굴레에서 벗어나세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타인도 아닌 나 스스로이고, 거기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됩니다. 나에 대한 모든 긍정적인 변화들은, 나를 오롯이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은 이상 당신이 서 있는 곳은 어디까지나 지옥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당신이 부디 당신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이야기는 오직 당신만이 써내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제 2. #학업
 

 

 고등학교 때만 해도 저는 전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 시절의 공부는 어렵긴 했지만, 며칠 노력만 한다면 가뿐하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를 풀고, 답을 찾고, 채점을 하며 동그라미가 늘수록 그보다 더 속 시원한 일은 없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그때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습니다. 자연 다큐멘터리 PD가 되어 전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니며 푸른 별 지구를 담고 싶었어요. 그게 아니면 페스티벌 기획자가 되어 색색깔의 조명 아래 같은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싶었죠. 이 꿈을 듣고 주변 사람들은 항상 응원해 주었어요. 그리고는 '일단 대학에 가야 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대학에 입학한 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적에 맞춰 지원했던 전공은 생각 이상으로 맞지 않았어요. 경영학과는 어떤 것들과도 쉽게 접목할 수 있다던 주변의 말과는 다르게 경영학과는 꽤 전문적인 학문이었습니다. 처음 접한 공급사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민해야 했고, 용돈기입장을 쓴 적도 없었지만 회계 장부를 써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걸 왜 배우고 있지?'라는 의문이 생겼어요. 답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3점 중반에서 왔다갔다하는 제 학점과 다르게 친구들의 학점은 4점을 훨씬 웃돌고 있었습니다. 함께 입학해 같은 수업을 들었지만, 동기들은 학술 동아리에서 깊게 공부하고, 진로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전 아르바이트와 공부, 동아리를 병행하느라 누구보다도 바쁘고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결과를 놓고 보니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간을 왜 이렇게밖에 쓰지 못했나 스스로를 원망할 정도로요. 제 학점을 들은 친구들은 장난 반, 진담 반 '노답'이라고 말합니다. 아직 뭘 직업으로 삼고 싶은지 모르겠다라는 말에는 '아직도?'라고 반문합니다. 구체적인 계획과 높은 학점을 지닌 그들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나 봐요.

 


 




'나는 도태되었어.'



 

 이 생각이 든 이후 최악의 대학 생활이 시작됐어요. 무엇을 잘하는지, 왜 남들만큼도 못 하는지 등 여러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심지어는 이 전공을 선택한 것까지 자책하기 시작했어요. 공부에 흥미는 더 떨어졌고, 친구들과는 시덥잖은 이야기들만 하는 일상이 계속됐습니다. 그 와중에 또 시간은 아까워서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스스로를 미워했어요. 미움과 원망이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셈이었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억지 공부를 하고 귀가한 날,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기는 한 거냐는 부모님의 호통을 들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 전과 후의 큰 성적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어요.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용히 이불 속에서 우는 것뿐이었어요.



 
 그렇게 울다 보니 갑자기 ‘이게 무슨 청승이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 자각 타임, 그러니까 말로만 듣던 ‘현타’가 온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남은 대학 생활도 우울하게 보낼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밤 울음만 삼키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들이 아닌가 하고요. 그래서 다음날,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나왔습니다. 원래 하려고 마음먹은 공부는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타고 나서, 그리고 내리면서 계속 사진을 찍었습니다. 귀갓길이라는 평범한 일상 속에 있는 예쁜 것들을 최대한 찾았습니다. 그런 후 직접 찍은 사진들을 훑어봤어요. 이걸 왜 찍었냐고 물을 법한 평범한 사진들, 실수로 셔터를 누른 게 아니냐고 물을 정도로 특징 없는 사진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모든 사진이 다 의미가 있었습니다. 지하철 창 사이로 들어오는 빛 줄기, 오래 기다리지 않았는데도 곧 지하철이 도착한다고 알리는 전광판, 김이 모락모락한 따뜻한 아메리카노까지. 하나같이 의미가 있고 따뜻하게 보였던 것들이었습니다. 사진을 보며 일상 속에 숨은 수많은 아름다움을 외면하고 속앓이를 하던 제 자신이 떠올랐어요. 누구의 눈에는 사소한 것들이 누구의 눈에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처럼, 원망의 대상이었던 제 자신도 생각을 조금 바꾼다면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당신도 주변의 잘난 사람들과 당신을 비교하며 몰아세우고 있지는 않나요?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찌질하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끊임없는 원망 속에 있지는 않았나요? 잠시만 시선을 남들로부터 거두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해 보세요. 그리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의식적으로 떠올려 보세요. 바로 자존감이 높아지지는 않겠지만, 스스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 마디의 영향은 꽤 크더라고요. '나도 괜찮을 수 있나 봐', '다음 번에는 잘할 수 있을걸?'과 같이 확실하지 않은 긍정의 표현이라도 좋아요. 조금이라도 따뜻한 생각이 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해내셨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알게 모르게 있을 동일한 고민을 하는 당신, 항상 응원할게요.
 










주제 3. #취업



 

 저는 취업준비생이에요. 대학교 학번으로 따지자면 10학번, 이제 27살이 되는 청년이죠. 처음에 대학에 입학했을 땐 너무 행복했어요. 그때가 가장 자존감이 높을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정말로 원하던 대학에 진학해서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어요. 그런데 처음 맞는 자존감 과다는 오히려 독이었어요. 점점 거만해지기 시작했거든요.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고 오직 내가 진리인 양 살았어요. 못할 게 없었죠. 세상이 같잖게 보이고 미래에 대한 꿈을 풍선처럼 부풀리곤 했어요. 자존감 과다에 대한 현실을 깨우치지 못하고 대학생활을 보낸 게 지금에 와서 후회되지만 어쩔 수 없어요.

 

 27의 나이에 7이라는 숫자가 20대 후반을 가리키는 것 같아서 두렵기 시작했어요. 26이라는 숫자는 20대 중반 같았거든요. 어른들은 그 나이면 한참 어린 거라고 뭘 두려워하냐고 코웃음 칠 거에요. 그건 그분들의 사정이죠. 저는 작년까지만 해도 대학생이었으니까요. 물론 취업이 되었다면 사정은 달랐겠죠. 막내 취급을 받으며 회사에서 귀여움을 샀을 거예요.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신입사원이라면 지금의 나이가 오히려 축복이었을 텐데······. 학교를 졸업하고 1년 동안 취업을 못 한 백수는 27이라는 나이가 무거워지기 시작했어요. 너무 조급해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그것 또한 그 사람들의 생각이죠. 이건 내 인생이거든요. 학교 옆에서 자취했는데 이젠 주위에 남아있는 동기들은 거의 없어요. 다들 취업이다, 대학원이다, 공무원 합격했다 등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나 홀로 아직 여기에 남아 있어요. 학생도 아닌데 마냥 학교 옆에서 자취하며 취업 준비를 하죠.

 

 자존감이 가장 낮은 시기를 꼽으라면 지금을 꼽을 거 에요. 앞서 말했듯이 계속해서 취업에 실패하면서 나이를 먹는 게 무능해 보이거든요. 그런다고 준비를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죠. 지나간 요건은 이미 되돌릴 수 없고, 그렇다고 무얼 더 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날마다 아무런 일정 없이 불확실한 꿈만 좇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이런 패턴이 스스로의 자존감을 더 낮추는 주요 원인이죠. 자존감이 낮아질수록 현실에 소홀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데 굳이 노력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도 들어요.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부정적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것에 실패하고······. 이게 돌고 도는 물레 같아요. 한 번 낮은 자존감의 늪에 빠지면 빠져나가기가 힘들어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없죠.

 

 자존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딱히 정해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극복하는 방식이 다 다르잖아요. 어떤 친구는 좋은 여자 친구를 만나 낮은 자존감을 극복했어요. 또 다른 친구는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을 만들면서 자존감을 회복했죠. 저는 제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룰 때면 자존감이 회복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오늘 세운 계획을 모두 이뤄 낼 때 말이죠. 자존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생각의 전환인 것 같아요. 나라는 존재가 가치 있는 존재이고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중요하다는 생각 같은 거 말이에요. 사실 이런 말도 지금 자존감이 낮아서 힘들어하는 분들께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땐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힘든 분들, 여기 한 명 추가요.

 












 

 


 

 
나이, 이름, 얼굴조차도 모르는 세 사람의 편지, 잘 받아 보셨나요? 마냥 세 편지 모두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쩐지 익숙한 내용들이었습니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했을 만한 주제, 연애, 학업, 취업. 마음 한 켠에 묻어두기에는 힘겨운 일들이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 말하기에는 괜한 투정으로 보일까 걱정되지 않았나요? 혼자 끙끙 앓느라고 고생했을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세 사람의 진솔한 응원이 전해졌길 바랍니다. 

대학 생활을 하며 자존감을 잃은 대학생들을 위해 상상univ.는 공감과 위로를 제공하고 자존감 회복 및 동기부여를 돕는 ‘청춘팡팡’ 캠페인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청춘의, 청춘을 위한, 청춘에 의한 자존감 회복 캠페인 ‘청춘팡팡’과 함께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길 바랍니다. 아래 URL을 통해 더 많은 청춘들이 당신에게 보내는 응원 메세지를 확인하세요!


http://service.sangsanguniv.com/campaign/pangpang.univ
해시태그 #상상편지 #청춘팡팡 #놀A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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