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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이야기

조선의 밤을 걷다

손경주 (ths9650**) | 2017-09-19


  수도권에 살고 있다면 서울 고궁은 다들 알 것이다. 낮에는 고궁을 돌아보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대개 가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밤에 고궁을 가기 위해선 보통 선착순 예매를 해야 하기에 가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점점 치솟는 물가, 그래서 부담을 느끼는 대학생들은 낮은 비용으로 낭만적인 데이트를 강구한다. 데이트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저렴한 데이트 비용으로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하려 한다. 서울 4대 고궁의 밤이 어떠한 지 잘 모르는 대학생들에게 우리나라 고궁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서울 4대 고궁이라 함은 경복궁부터 시작해서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덕수궁까지 일컫는다. 각 고궁들은 하나의 궁궐이 아니다. 수많은 건축물들과 자연을 품고 있다. 처음 이 야간 고궁 투어를 생각했을 때, 단순히 각 고궁들의 역사적 의미만이 와 닿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돌아다니다 보니 향긋한 나무 냄새, 물 냄새에도 취했다. 또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나 또한 덩달아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 물론 세 곳 모두 혼자 놀러 온 사람은 나 뿐이었다. 창경궁, 경복궁, 덕수궁 순으로 다녀왔는데, 이 순서 선택은 탁월했다. 창경궁과 경복궁은 확실히 그 느낌이 달랐고, 덕수궁은 이 둘을 약간 혼합한 듯 했다. 이번 기회에 얻은 느낌은 잊지 못 할 것 같다. 내년에도 이번처럼 조선의 밤을 걷고자 한다.
 

출처 - 창경궁 홈페이지

  밤에 나선 고궁 투어의 시작은 창경궁이었다. 이에 딱히 별다른 의미는 없다. 단지 머릿속에 이 여행이 떠올랐을 때 세 곳의 예매 정보를 확인했고 그 중 시즌이 가장 빨랐을 뿐이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때마침 창경궁은 그 예매 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경복궁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즈음이었다. 밤에 고궁을 가겠다고 결심을 여러 번 했으나 단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다. 해가 쨍쨍할 때도 경복궁 말고는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잔뜩 기대감에 부푼 상태에서 창경궁으로 몸을 이끌었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곧바로 정전을 찾았다. 고궁의 시그니처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 하면 정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궁 내부를 거닐 때 TV에서 봤던 사극들의 여러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오버랩 되었다.

 
 
명정전은 다른 궁궐의 전각들이 남향인데 반해 동향이다. 궁궐건축은 남향을 예로 따르는데, 명정전은 자연을 고려한 결과라고 한다. 광해군이 창경궁 중건 논의 당시 남향으로 중건하자는 얘기에 “선대께서 하신 일을 내가 마음대로 거역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동향으로 중건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선조와 달리 전쟁터를 전전하며 백성들을 챙겼던, 백성들에게 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명과 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쳤던, 그리고 선대에 대한 예를 지킬 줄 아는 광해군은 훌륭한 왕이다.


  명정전도 아주 좋았지만, 창경궁의 최고를 꼽자면 춘당지이다. 밤이라 더욱 영롱한 조명빛깔들이 늘어서 있고, 그 빛의 길을 따라 가족들이, 그리고 커플들이 산책을 한다. 홀로 갔던 입장이었으나 부러운 느낌 보다 그 모습이 심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밤이라 보이지는 않았지만 춘당지에 텃새로 원앙이 살고 있다고 한다. 원앙금침이라는 말을 다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잉꼬와 더불어 금술 좋은 부부를 일컫는 대표적인 말이다. 가히 창경궁 춘당지는 애정의 장소라고 할 만하다. 춘당지 중간에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이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사진을 찍어두자.


  모두 둘러보고 난 뒤 느낀 점은 역사를 아는 것, 또는 관광을 하는 느낌보다 산책하기에 정말 좋다는 것이다. 뭐랄까, 조선의 밤을 느끼고 싶어서 갔는데 정작 산책하는 순간, 순간이 상쾌해서 다른 생각들은 모두 잊어버렸다.



출처 – 경복궁 홈페이지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이번 고궁 투어의 클라이막스라고 기대했던 경복궁이었다. 현재 한국 땅에 많은 고궁들이 잔재하는데, 그 중 최고를 꼽으라고 한다면 100이면 99 경복궁을 꼽지 않을까 싶다. 역시나 행운이 따랐던 걸까, 예매 사이트를 들어갔을 때 마침 시작하는 타이밍이었다.


  광화문이 경복궁의 정문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남쪽의 문인지는 몰랐다. 나머지 세 개의 문도 이번 기회에 그 이름들을 알게되었다. 동쪽의 문은 건춘문, 서쪽의 문은 영추문, 북쪽의 문은 신무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재의 광화문 일대가 시민들에게 개방된 것이 2009년이라는 비교적 최근이었다. 이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광화문의 이름만 알고 있었다.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인 광화문, 그 밤의 모습은 절경이라 하기 충분했다. 아직 내 친구들은 이 모습을 알지 못함에 몹시 안타까웠다.


  근정전은 내가 본 역사적 건축물 중 가장 그 규모가 컸다. 조선 왕실을 상징하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흥선대원군이 중건했고 다시 6.25 전쟁 당시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다가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내부의 용상을 보니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를 내쫓고 왕위를 찬탈할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왕의 자리는 비어 있었으나 위대해 보였다.


  신분제가 엄격했던 옛날, 그 벽을 허물고 출세했던 인물들이 몇 명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과학자 장영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박자청이 먼저 노비라는 신분을 극복하고 종1품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가 유명한 이유는 경회루 뿐만 아니라 성균관이나 창덕궁 등 조선 초기 대부분의 공사를 맡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조선을 설계한 사람이 정도전이라면, 조선을 실현한 사람은 박자청이라고 말 한다. 하지만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겨준 장소였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기도 한다.


  경회루 가는 길에 위치한 수정전을 지날 때 아주 큰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국악이었다. 고궁 내부에서 들려오는 국악에 감회가 새로웠다. 평소에는 그렇게 듣기 싫은 국악이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무척이나 흥이 겨웠다. 난생 처음으로 국악에 매료되었던 순간이었다.

  경복궁은 다녀온 고궁 세 곳 중 가장 역사적인 의미가 크게 와 닿았던 궁궐이었다. 위에서는 근정전만을 언급했지만 사실 경복궁 내부에는 근정전 뒤쪽으로 무수히 많은 수의 전각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길도 복잡했고 그만큼 재미있었다. 곳곳에 포토존들이 굉장히 많아 사진을 찍으며 노니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출처 - 덕수궁 홈페이지

  마지막으로 덕수궁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고궁이다. 경복궁과 창경궁의 매력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덕수궁은 조선보다도 대한제국과 관련이 더 깊다.


  마찬가지로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을 지나자 마자 정전부터 찾았다. 창경궁의 명정전과 경복궁의 근정전은 보자 마자 정전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덕수궁의 중화전은 정전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왜소해 보였으며, 상시개방이라 그런지 조명 또한 약했다. 예산 문제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했다.


  덕수궁의 시그니처로 알려진 석조전이다. 건물 양식만 봐도 르네상스를 떠올릴 수 있다. 대한제국 시절 고종 황제 재위 기간에 지어졌다. 건축 이후 짧은 시간 황제 내외가 머물렀다고 하며,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소공동위원회의 회담 장소로도 쓰였다고 한다.
 



  덕수궁은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역사적 건축물들이 많았다. 석조전 또한 그렇고 이 정관헌 또한 그러하다. 과거 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고종 황제가 커피를 즐겨 마시던 곳이라 읽었던 적이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던 장소였다. 퇴장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아무도 없는 정관헌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덕수궁에서도 음악회를 했다. 시작하기 15분 전이었기 때문에 근처에 앉아서 기다렸다. 기간이 정해져 있을 뿐더러 요일마저 금요일과 토요일로 한정 되었다. 행운이었다. 특이하게 동화와 함께 진행되었으며, 그 동화 또한 스토리가 꽤나 흥미로웠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는지 다른 사람들 또한 모두 집중하고 있었다. 동화는 책의 용도를 몰랐던 시민들이 책을 읽는 법을 알고나서 행복해하는 내용이다.



  구한말, 일본에 위협을 느낀 고종 황제가 경운궁 터의 일부를 서구 열강 공사관 용지로 떼어주면서 소유권을 양도했다. 덕수궁 돌담길은 전체 1.1km에 달하는데 그 중 영국대사관 앞 170m는 영국대사관이 철문을 세우면서 지난 58년 동안 일반인의 통행이 제한되었다. 그러던 중 2014년 10월 서울시는 영국대사관에 ‘덕수궁 돌담길 회복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영국대사관은 이를 받아들였고, 2017년 8월 30일부터 그 170m 중 100m가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덕수궁 돌담길과 관련해서 아주 흥미로운 속설이 하나 있다. 연인과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산책로에 그런 속설이 나돌다니,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곧바로 그 이유를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덕수궁 안에는 후궁들이 많이 살았는데, 왕의 승은을 입지 못 한 후궁들이 연인들에게 내린 저주가 그 첫 번째이다. 옛날이야 민간신앙이 성행했으나 현대는 그렇지 않기에 이 이유를 신경 쓸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얼마 전에 있었던 박원순 서울 시장의 방문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돌담길이 끊어져 있음을 그 속설의 이유로 언급했다. 그런데 이제 연결되었기 때문에 그 속설을 부인했고, 아내와 함께 옴으로써 그 말에 신빙성을 더했다. 마지막 이유는 애초에 미신을 믿지 않는 입장이지만 그나마 그럴 듯했다. 현재 돌담길에 있는 시립미술관이 들어서기 전에는 그 자리에 가정법원이 있었다고 한다. 이혼을 하기 위해 이 길을 부부들이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가정법원은현재 없어졌고 시립미술관이 들어서 그 터조차 남아있지 안다. 더 이상 이별하는 사람들이 걷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속설을 모르는 젊은 남녀, 혹은 가족이 함께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제는 사랑이 깨지는 길이 아닌, 사랑이 자라나는 길이다.


  대한문을 지나면 눈앞에 널따란 산책로가 펼쳐져 있다. 걷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에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좋긴 했지만 굉장히 그 길이가 짧았기 때문에 덕수궁의 대략적인 규모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작은 규모와 짧은 길이었기에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석조전이나 정관헌과 같이 역사적인 의미도 많이 갖고 있는 덕수궁은 소소하게 걷기에도 아주 좋았다. 마치 창경궁과 경복궁의 장점을 골고루 가진 듯 했다. 상시개방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했을 때 이번에 느꼈던 조선의 밤 중 최고였다.




  고궁 야간개장을 다녀온다고 하면 모두들 예매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예매할 생각은 가끔 하지만 실제로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본다. 그런데 3~4년 전 처음 화제가 되었을 때는 어렵다는 통설은 맞는 말일지도 모르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나만 봐도 즉흥적으로 생각했던 야간 고궁 투어를 네 곳 중 세 곳이나 다녀왔다. 이번에 가지 않은 창덕궁은 추후 다음 시즌에 갈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고궁 야간개장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창경궁은 시즌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도 성공을 했지만, 경복궁은 예매 시즌 중반부가 되면 표가 매진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아예 마음을 놓는 것은 예매 실패로 이어질 것이다. 내가 생각한 팁이 있다면 바로 정공법. 즉, 타이밍노력이다. 여기에 운이 가미된다면 확실하겠다. 주기적으로 예매 기간을 확인하고 시작 시간을 기다렸다가 예매하는 것, 그게 가장 확실한 팁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게 무슨 팁이냐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방법이라 대수롭게 여겨 실제로 하지 못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출처 – 창경궁 홈페이지

  올해 창경궁은 365일 중 63일을 밤에 문을 열었다. 그 기간도 연속되지 않고 띄엄띄엄 있으니 생각을 하고 있다면 타이밍을 잡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예매는 보통 9일전부터 시작하니 잘 체크해 놓길 바란다. 정말 확실하게 예매를 하고 싶다면 시간까지 오후 2시를 맞추는 것이 좋다. 이게 바로 티케팅을 위한 노력 아닐까? 그런데 이례적으로 초기에 공지했던 기간 외에 야간 특별관람 일정이 추가되었다. 나 또한 이 기간, 그것도 막바지에 다녀올 수 있었다.

출처 경복궁 홈페이지

  작년보다 그 기간이 줄었다. 창경궁보다 조금 더 어려워 보일지 모르지만 4월부터 9월까지라는 점에서 타이밍을 놓치기가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2018년 봄과 여름에 문득 경복궁을 생각한다면 인터넷으로 확인을 해보자. 그럼 예매 기간이 나와 있을 테니 꼼꼼하게 기록해 놓고 노력을 기울인다면 분명 예매에 성공할 수 있다.

출처 – 덕수궁 홈페이지

덕수궁은 감사하게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개방한다.
 

출처 – 내 서로이웃 롱님 블로그 http://blog.naver.com/angel_9407

  또 다른 팁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한복. 고궁 홈페이지에서 권장하는 정공법이자 편법이라 할 수 있는 팁이다. 창덕궁은 표 가격이 3만 원이나 하고 100매 한정 판매이기 때문에 논외로 친다. 이와는 반대로 덕수궁은 상시 예매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가서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남은 두 곳 창경궁과 경복궁에 바로 이 한복 팁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한복 착용자를 위한 표 판매도 이제는 현장 발매에서 인터넷 사전 예매로 바뀌었으나 그 수량이 남고 남는다. 명백하게 저렴한 창경궁과 경복궁의 표 값이 한복을 입을 사람들에게는 제로가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복 대여가 4시간에 1~2만 원을 하니 순수하게 경제적인 비용만을 고려했을 때는 한복 착용을 최후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맞다. 실제로 한복을 입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가족들도 있었고, 친구들도 있었고, 커플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한복을 입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장면들이 아직도 뇌리를 떠나가지 않는다. 젊은 부부와 애기들이 모두 한복을 입고 하하호호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얼굴에 함박웃음을 절로 지어졌다. 단지 바라만 봐도 이런데 직접 착용한 이들은 어떨까? 그 추억의 가치는 절대 경제학적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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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주 (ths9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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